많은 사람들이 하루의 시간을 일하는데 보내고 있다. 나만 보더라도 9시 출근해서 18시에 퇴근한다. 하루 8시간을 일하는데 보낸다. 일하기 위해서 출근하고 퇴근하는 시간을 포함하면 하루 10시간은 일하는데 삶을 보낸다. 일이 많은 시점에는 22시에 퇴근하니, 하루 거의 15시간을 일하는데 시간을 보낸다. 도대체 일이란 무엇이길래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것인가?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다음과 같다.
무엇을 이루거나 적절한 대가를 받기 위하여 어떤 장소에서 일정한 시간 동안 몸을 움직이거나 머리를 쓰는 활동. 또는 그 활동의 대상. (표준국어대사전)
노동에 대한 대가를 받기 위해 일정한 시간동안 몸이나 머리를 쓰는 활동이라고 한다. 노동의 대가는 아마도 "돈"일 것이다. 대부분은 그렇게 생각 할 것이다.
하지만, 노동에 대한 대가가 "돈"만 있다고 생각하면, 삶은 얼마나 괴롭고 힘들지 안타깝다. 자신이 "일"을 어떻게 바라 보는지에 따라서 다르다.
쇼펜하우어는 일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간은 일해야 한다. 자신에게 어울리는 노동에 뛰어들어야 한다. 노동은 인간에게 땀방울을 요구한다. 땀방울은 한 인간이 자기 자신의 의미에 대해 눈을 뜨게 만든다. 이것이 제대로 대접받지 못한다면 그 사회는 이미 죽어버린 사회다. (쇼펜하우어, 당신의 인생이 왜 힘들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다만, 그 일에 대한 대가는 ==“자기 자신의 의미”==이다. 단순한 돈이 아닌 것이다. 이어령 선생님의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이란 내용에서도 쇼펜하우어와 비슷한 내용을 글이 있다.
인생도 그렇다네. 세상을 생존하기 위해서 살면 고역이야. 의식주만을 위해서 노동하고 산다면 평생이 고된 인생이지만, 고생까지도 자기만의 무늬를 만든다고 생각하며 즐겁게 해내면, 가난해도 행복한 거라네. (이어령,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자기만의 무늬를 만든다고 생각하면서 일을 하라는 것이다. 얼마나 멋진 말인가? 반대로 지나친 노동에 대한 비판의 말도 있다. 내가 좋아하는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월든"에는 이렇게 이야기 한다.
비교적 자유로운 이 나라에서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지와 오해 때문에, 부질없는 근심과 과도한 노동에 몸과 마음을 빼앗겨 인생의 아름다운 열매를 따보지 못하고 있다. 지나친 노동으로 투박해진 그들의 열손가락은 그 열매를 딸 수 없을 정도로 떨리는 것이다. 사실, 노동하는 사람은 참다운 인간 본연의 자세를 매일 매일 유지할 여유가 없다. 그는 정정당당한 대인관계를 유지할 여유가 없는데, 만약 그렇게 하려 들다가는 그의 노동력은 시장가치를 잃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20 page, 헨리 데이빗 소로우, 월든)
지나친 노동은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자기 자신의 의미를 찾고, 자기만의 무늬를 갖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나친 노동은 그것을 찾을 수 있는 여유를 잊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과거에 비해 많이 개선되었다고 하지만 아직 너무 많은 노동을 하고 있다. 계속 줄어들고 있는 출산율 등 모든 것이 지나친 노동과 연관이 되어 있다고 생각된다. 당장은 손실이 발생할지 모르지만, 장기적인 시점으로 조금씩 노동을 줄여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