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Self-improvement

독서노트 - 시계태엽 오랜지 (앤서니 버지스)

728x90
반응형

 
많은 생각을 하였다. 책을 덮는 순간까지 긴장감을 놓을 수 없는 엄청난 몰입감을 가져온 책이다. 소설은 크게 3가지 이야기로 나뉜다. 주인공인 알렉스가 범죄를 저지르는 일이 첫 번째 이야기이다. 두 번째 이야기는 알렉스가 감옥에서 경험하게 되는 내용을 그렸다. 마지막에는 감옥을 나온 후의 이야기 이다.
간략한 줄거리는 소설의 주인공인 알렉스가 1부에서 엄청난 범죄를 저지른다. 책을 들고가는 노파에게 폭력을 가하고, 어떤 소설가의 집에 들어가서 범죄를 저지른다. 뿐만아니라, 혼자 살고 있는 할머니를 살해하는 등의 많은 범죄를 저지른다. 주인공인 알렉스는 그러한 범죄행위에 대해서 아무런 죄의식을 가지고 있지 않다.
1부에서 등장하는 소설가는 주인공과 동명인 알렉스이다. 알렉스가 쓰는 소설 책이 바로 “시계태엽 오랜지”이다. 여기에서 알렉스는 이렇게 이야기 한다.

“인간, 즉 성장하고 다정할 수 있는 피조물에게 기계나 만드는 것에 적합한 법들과 조건들을 강요하려는 시도에 대항하여 나는 나의 칼, 펜을 든다.” (62페이지)

소설을 통해서 버지스는 이렇게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2부에서는 감옥에 들어간다. 감옥에서도 그 환경에 따른 행동을 한다. 결국, 신임 죄수를 살해고, 정신치료라는 명목으로 어떤 병원에서 구토유발 주사를 맞고, 폭행장면의 영상을 보면서 정신을 개조받는다. 그래서 알렉스는 자신이 폭력적인 생각을 하기만 하면, 몸이 고통스러워 한다. 이렇게 정신이 개조된 상태를 보고 감옥에 있는 목사는 이렇게 이야기 한다.

“저 애에게는 진정한 선택의 여지가 없어요. 그렇지 않나요? 자기 이익, 육체적 고통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자신을 모독하는 괴이한 행동을 하게 된거죠. 그게 진심에서 한 행동이 아니라는 걸 확실히 알 수 있어요. 쟤는 더 이상 나쁜 짓을 하지 않겠지요. 그러나 또한 더 이상은 도덕적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신의 피조물도 아닌 겁니다.” (192페이지)

사람이 아니라, 정신개조를 통해 기계가 되었다는 것이다.
 
3부에서는 정신이 개조된 상태에서 감옥을 나온다. 감옥에 나온 뒤로는 집에서도 쫒겨나고, 도서관에 갔다가, 예전에 자신이 폭행을 했던 남성에게 쫒기다가, 소설가 알렉스의 집에서 머물게 되었다. 소설가 알렉스는 현재의 정부를 자행했던 정신개조의 반대파 운동가였는데, 여기에 주인공인 알렉스를 이용하기로 한다. 여기서도 소설가의 동료들은 알렉스를 인간이 아닌 기계로 여긴다.

“좋아요. 좋아요 그렇지요? 아주 환상적인 도구가 될 수 있을 것 같군요. 이 아이는. 물론 얘가 지금보다 더 아프고 더 산송장처럼 보인다면 훨씬 더 나을 텐데 말입니다. 대의를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라도 해야겠지요. 무슨 수가 분명히 있을거요” (238페이지)

대화의 내용에서 처럼, 주인공이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도록 잔인한 고통을 안겨주었다. 그리고, 관련 내용이 기사화되어 주인공은 뇌치료를 통해 원래대로 돌아간다. 그리고 몇년의 시간이 지난 뒤의 주인공은 이런 생각을 갖는다.

즉, 그 집의 옆방에는 옹알거리는 내 아들이 누워 있는 거야. 그래, 그래, 여러분, 내 아들이야. 그때 난 몸뚱이 속에 텅 빈 자리를 느꼈고 스스로도 놀랐어. 무슨일이 일어나는지 알게 된 거야, 형제 여러분. 철이 든다는 것이겠지. (270페이지)

폭력적이던 주인공은 자연스럽게 철이드는 것으로 소설을 마지막을 장식한다.
 
소설의 읽으면서, 난 작가의 생각에 계속 동의했다. 아무리 악이 있더라도, 거대한 힘을 가진 자가 그를 기계화 시켜서는 안되는 것이다. 요즘 사회에서는 그런 일이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난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는 앤서니 버지스의 이야기들이 많이 있다. 러시아에서 경험했던 내용들이 소설에서 투영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러시아의 음식과 사람들은 매우 따뜻하지만, 러시아 정부(구소련)의 탄압에 대해서 안타까워 한다는 것이다. 러시아의 음식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 했다.

참으로 이상하게도 이런 가족적인 따스한 느낌은 심지어 음식에서도 느껴진다. 어딜 가도 볼 수 있는 투박하지만 맛깔 나는 ‘보르시치’수프에서는 사람의 온기 없이 직업적인 품격 요리의 정신이 느껴지지 않는다. (336페이지)

 
작가의 후기를 읽으면서, 앤서니 버지스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 마지막 결론에 대한 생각이 바뀐다.
처음 소설을 집필하는 당시 (1961)에는 맞서 싸우기 위해 펜을 든다고 한다. 10년 후인 1972년에는 이렇게 이야기 한다.

저는 사랑은 적극적인 힘이고, 우리는 다른 사람이나 사물을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제안하곤 합니다. 이런 일은 20세기가 도전해야 할 일로 보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할 수 있을 까요? 1972년 10월 25일 (356페이지)

사랑이라고 이야기 한다.
그리고 책의 마지막 1982년 에는 이렇게 이야기 한다.

한때는 내가 공적으로 그것을 제거하는 법을 알았지만, 지금 나의 유일한 희망은 개인으로서 폭력을 사회의 정상적 규범으로 수용하길 거부하고, 그 결과 순교자의 길을 갈 준비를 하는 것이다. 어두운 미래의 전망이다. 1982년 3월 16일 (432페이지)

순교자의 길을 갈 준비를 한다고 한다. 이는 폭력을 바라보는 앤서니 버지스의 시점이다. 마지막 내용을 보면, 쇼펜하우어의 이야기 생각난다.

구타는 그저 구타일 뿐이다. 골목에서 당나귀와 마주쳐 발굽에 치일 수도 있다. 개에게 물려도 아프고 화가 나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개에게 물렸다고 해서 인간으로서의 나의 명예가 땅에 떨어져 짓밟히는 것은 아니다. (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저자(글) · 김욱 편역, 당신의 인생이 왜 힘들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

 
소설에서는 이것을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을까.
 

인간은 소우주이고, 마치 과일과 같은 유기체처럼 성장해서 색깔, 향기, 당도를 가질 수 있다. 이를 간섭하거나 조건 반사를 통해 조절하는 것은 인간을 기계로 만드는 일이다. (340 페이지)
728x90
반응형